예배 이야기

예배에 대한 흔한 오해

음악노트 2021. 3. 10. 11:40

3월을 시작하며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제목은 [예배미학]. 이 책을 통해 지난 시간동안 제가 해 왔던 예배를 섬기는 일, 특별히 예배인도와 관련하여 고민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고 검토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매주 (혹은 정기적으로) 드리는 예배시간에 나는 예배자인가?"

 

우리들은 교회공동체에서 구별하여 정해 놓은 시간에 참석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해진 예식을 따라(예전을 따라) 인도자가 이끄는 것에 단순히 참석하는 것을 예배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가 직접 하나님을 향해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를 받기 합당한 분에게 예를 갖추어서 엎드리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상호 간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고 말과 행동 등으로 마음이 표현되어지고 서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정말 당신과 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인격적인 관계란,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에 관하여'가 아니라 '~을 아는 것'입니다. 예배가 인격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면 이런 질문을 다시 받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아는가?' 상대를 알아야 그에게 대해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각자는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라는 나름의 '상(image)'이 있습니다. 만약 그 조각을 다 맞추어 본다면  '하나님'이란 분을 온전히 그려내는 그림이 나올까요?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예수님에 관한 '그림(image)'은 과연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셨던 그 예수님의 모습과 같을까요? 아마 큰 편차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 얼마나 되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으며,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영어로 예배를 표현할 때 Worship Service라고 많이 씁니다. 분명한 것은 예배는 성도(회중)에게 대한 서비스service 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서비스service라는 점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그저 자신의 필요를 채움service 받기 위해 예배당을 찾고 있는 건 아닙니까? 예배의 순서와 그 공간에 배치되고 활용되는 모든 요소들은 무엇을 위한 것들입니까? 어디에 비중이 더 실려 있습니까? 인격적인 만남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고려되어 있습니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마주한 우리의 현실은 생각보다 비참했습니다.  공동체가 모일 수 없을 때 각 개인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했는가를 돌아봅시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회중이 함께 했을 때에나 홀로 있을 때에나 변함없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끝없이 소통하며 일상을 살아가셨습니다. '신앙생활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예배에 대한 착각과 오해에서 벗어나 '참된 예배'에 대해 고민하며 중심을 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배 아닌 것을 예배로 착각하며, 주님과 상관 없음에도 자신은 '주의 일을 하고 있다'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구약성경, 이사야 1장 11절~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