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이야기

문턱을 낮추고 하나되는 예배

음악노트 2021. 3. 18. 12:22

[예배]에는 '관계성'이 존재합니다. 아바(abba)와 자녀로서의 관계가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 간의 사귐을 기초로한 믿는 사람들 간에 이뤄지는 '연합'-특별히, 성찬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존재합니다. 최근 소개받아 읽고 있는 책, [예배미학, 박종환 지음]을 통해 저는 '성찬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있어 성찬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예식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애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웃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는 행위도 포함된 따듯한 식탁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참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혹은 배우지 못했던- 전통 하나를 발굴해 낸 것이지요. 

 

박종환 님께서 제안한 것처럼 저 역시 한국교회의 예배의 요소에 [성찬]이 자주 행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졌습니다.  제가 볼 때 성찬이 가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길에서 돌아서 예수그리스도를 '주(LORD)'로 모셨던 이들이 믿음으로 인해 핍박을 받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명을 따라 행한 이 식탁교제(Agape)'에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그것도 눈에 보기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주님(Adonai)인가? 그게 정말 맞다면 증거를 보이라"고 하는 도전을 매일 받지 않았을까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게 하고, 더욱 하나님과 굳게 하나됨을 추구하며 살게 한 배경에는 [성찬]이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튼 현재 한국에서의 예배의 현장은 계속되는 '분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통과의 분리와 세대간의 분리를 비롯하여, 성도간의 분리 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비롯한 이웃들과의 단절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까닭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에서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실현되는 코이노니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고난받고 죽임 당하시기 전 마지막 밤을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균형의 영성]을 쓴 '토미 테니'는 우리가 마르다의 영성과 마리아의 영성 모두를 다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저는 우리 한구교회가 이 균형을 다시 잡는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늘 너희와 함게 있는 것은 아니다'(마태복음 26장 11)라고 했습니다. 구약 신명기에는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신명기 16장 11절, 새 번역성경)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언급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웃들에게, 심지어 믿는 자들에게까지도 공동체의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냄새나는 사람들, 장애인, 말수가 적은 사람, 구걸하는 사람들,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들에게 행해지는 거절과 외면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지도자들 중에 '저런 사람을 왜 나한테 데리고 왔느냐!'라며 호되게 호통치는 사람 앞에서 한 없이 움츠렸던 어린 시절의 제 아픈 추억은 매우 강하게 각인이 되어 선명하게 자국을 남겼습니다. '이게 교회인가!'라고 분노했던 적이 많지요. 그래서 가끔은 제가 쓰는 글 속에도 종종 교회를 향한 날카로운 감정이 드러나곤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다른 그릇, 다른 모양으로 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다시 쓰는 예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깨어진 관계들은 결국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예물을 드리다가 이웃에게 잘 못한 것이나 갚아야 할 것이 기억난다면 예물을 두고 가서 화목하고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일상에서의 모든 것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으려면 '교제'( Κοινωνι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계명은 예배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죠. 하나님께 대해서만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문턱을 낮추고 화목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도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임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흘려주신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성소 안으로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중심잡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