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이야기

여백이 있는 예배사역

사막여행자 2020. 10. 19. 12:03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탁상용 달력을 삽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여백이 넓어져 있을 때, 종종 자신의 삶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바둥거릴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예배사역을 돕는 자리에서 이와 같이 모든 공간을 채우려는 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기독교 음반을 들으면서 점차로 '여백'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기예배 시간에 참여하면서도 모든 공간이 '소리'와 미디어를 통한 '영상' 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지어 광고에도 화려한 스킬로 채워진 음악과 잘 다듬어진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 배경영상까지 온전히 채워둔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슬슬 지겨워집니다. 그런 '채움'이 불편해집니다.

 

예배란 한 개인과 더불어 공동체를 이룬 모두가 각자 하나님 앞에 1:1로 서 있는 시간이자 온전히 하나님께 향한 것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쉽게 쓰는 용어인 '하나님의 임재'는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임재라는 것은 그곳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마주한 사람들은 한 결같이 엎드러졌습니다. '나'란 존재가 차지하는 자리라곤 그저 서 있는 그 공간뿐이었고, 그나마도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가 되어 엎드릴 수밖에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으로 충만한 자리였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예배시간은 다른 것이 자꾸만 가득 차고 있습니다.

 

찬양만 보더라도, 음악적으로나 가사까지 모두 훌륭한 곡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꾸만 그 곡들을 들으면서 '이 곡은 회중과 함께 하긴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리스트가 많아져 갑니다. 때로는 이 노래들로 인해 회중이 오히려 하나님께 집중 못하고 그 곡을 따라 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만 같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선배 찬양사역자들은 한결 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음향에 있어 너무 볼륨을 크게 하지 말자. 회중들이 자기 목소리를 들으며 찬양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단순하고도 정갈하게 준비된 공간에서 적당히 귀에 들려오는 반주에 맞춰서-때로는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서- 다른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맞춰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올려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질 것입니다. 연주자들도 Fill-in(필-인)까지 빼곡히 채워가는 솔로리스트가 되지 말고, 그저 그 여백의 순간에 숨을 쉬면서 다음 선율로 넘어갈 수 있게 가이드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굳이 예배시간 안에 광고를 넣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복음성가인지 성가인지 경배의 찬양 인지도 구분을 안 하는 선곡을 하고, 성악이나 전문적 음악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을 세우는 것에 고민을 하고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예배가 중요하다면서 정작 비워두어야 할 중요한 자리마저도 빼곡히 채워버리는 것은, 예배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이전에도 했지만,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하고픈 말은 예배라는 그 의미에 맞게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 보시길 권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찬양사역 담당자 여러분들, 지금 예배자로서의 정체성을 정말 잃지 않고 있습니까?